
19세기 말부터 가속된 청 제국의 혼란화는 13대 달라이 라마에게는 곧 기회였다. 티베트 내에 거류하던 중국인들을 지속적으로 추방하고 *최왼 제도를 파괴하는 등의 대중국 강경정책으로 티베트-중국 외교간 전통적 의례가 전부 유명무실해지고, 중화민국 시대만 해도 중국인들은 전통적 관계의 재수립을 강렬하게 희망하였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시대의 중국인은 구습과의 철저한 단절을 선언하면서 전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였다.
그러면서도 모순적이게도 현대의 중국인은 현재의 티베트 중국 관계의 정당성을 역사와 전통에서 찾고 있다. 이른바 티베트 문제가 확대되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자, 중국인 학자들은 조공과 최왼, 공시 관계로 대표되는 역사적 사실을 기준으로 "원래 서장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가설을 입증함으로써 현재의 티베트 지배를 정당화하는 작업에 몰두해 왔으며, 그 주된 논거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이 "옛 시대의 구습" 이라며 한때 그토록 타파하려고 애를 쓰던 봉건 시대의 조공책봉관계의 역사에서 발췌하는것이다. 하지만 역사에 보였던 최왼이나 책봉 등은 그 자체가 종주국과 종속국간의 수직적인 예속관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것은 양국 군주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일 뿐이다.
즉 티베트라는 역사공동체나 중국이라는 역사공동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에, 국가 혹은 군주 사이의 정치 종교적 관계를 가지고 역사공동체 상호간의 관계를 판단할 수는 없다. 역사공동체는 특정한 생활공간과 문화, 언어, 혈통의식, 역사적 경험 등 을 공유하는 공동체여서, 정치적 관계만으로 역사공동체 상호간의 관계를 논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티베트와 중국이 과연 어떤 관계를 갖고 있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티베트가 하나의 독립된 역사 공동체로서의 역사적 정체성을 얼마나 보존하고 있었는가를 따로 살펴 보지 않을 수 없다.
*최왼:몽골과 청 제국의 티베트 통치 관행으로, 티베트를 지배하는 외세 제국이 존숭하는 종파의 법주(法主)가 시주(施主)에게 종교적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시주의 영적인 스승이 되는 대신 시주는 세속 군주로써 법주와 티베트의 세속적 통치 권한을 일임받고 법주를 보호하는 제도를 말한다.
명 제국도 티베트의 일부 종파와 최왼 관계를 맺었으나 당시의 티베트는 정치,종교적인 분열이 극심하던 시기라 명의 통치는 티베트에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몽골 제국의 치세엔 샤카, 청 제국의 치세엔 겔룩이라는 티베트 전역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파가 존재했기에 명 제국의 최왼 관계와는 실질적으로 나타났던 부분이 극명히 다르다
단순히 말하면 티베트는 중국의 광범위한 불교 통치의 정당성을 제시해주면서 세속적으로는 중국의 보호를 받는 제도인데, 본문에 기술했듯 정치적으로도 예속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니 이 점에 유의
자료 출처
티베트와 중국의 역사적 관계 - 김한규 저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티베트는 반만년 독립국이 아니며 지상낙원도 아니다 (0) | 2021.03.29 |
---|---|
고스트 오브 쓰시마가 그려낸 가짜 일본 (1) | 2021.03.22 |
좋은 무슬림, 나쁜 민족 (0) | 2021.03.10 |
제노포비아 감정에 소모되는 민족 (0) | 2021.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