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스트 오브 쓰시마가 그려낸 가짜 일본

아왕롭상갸초 2021. 3. 22. 18:18

 

이 게임의 특징 중 하나인 자연의 미려함이 선보이는 풍경이 매우 훌륭하다. 주인공 사카이 진이 쓰고있는 대칭이 맞지 않는 초승달 장식이 되어있는 카부토는 다테 마사무네의 것을 베낀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계에서의 일본의 위상과는 다르게 일본 역사를 다룬 AAA급 게임은 코에이에서 만드는 전국무쌍, 노부나가의 야망을 제외하면 그닥 없다시피한데, 그런 나의 가려움증을 긁어주기라도 하듯이 고스트 오브 쓰시마 약칭 고오쓰가 지난해 7월에 출시되었다.

 

여러모로 훌륭한 게임이였고 지금도 좋은 인상으로 남았지만 본 게임의 고증 수준은 몽고습래(蒙古襲來)가 아닌 내 안구습기를 차게 만들었는데 고스트 오브 쓰시마에서 묘사되는 일본이 실제 가마쿠라 시대와 얼마나 달랐는지 짧게 글을 남겨보려고 한다.

 

1. 쓰시마의 무사들은 그렇게 잘 항전하지 못했다

몽골군이 쓰시마에 도래한것은 분에이 10월 5일(1274년)의 일로 막 해변가에 상륙한 1,000여명의 여몽연합군 선발대를 상대로 고작 80명의 무사들을 거느린 당시 쓰시마의 지배자였던 소 스게쿠니(宗助国)는 쓰시마에 상주하던 고려인인 "진계남"이라는 자를 보내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였으나 여몽연합군은 화살로 응답했고 이에 교전이 시작되었다. 

 

쓰시마군은 여몽연합군의 장수를 쏴 죽이는 등 의외로 잘 응전하였으나 그것도 기우였을 뿐 쓰시마의 무사들은 하루만에 모두 전멸하고 만다.

 

물론 게임이 단 하루의 싸움을 다루기에는 뭐하니 사커펀치측에서 대체역사(?)를 만든게 지금의 고오쓰 스토리므로 이건 고증오류라고 부르긴 뭐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단 한번도 인구 10만이 넘어본 적 없는 작은 섬 쓰시마의 주민들이 모여 수만명이 모여있는 대군 몽골군을 상대로 낙성된 성을 되찾고 그런건 너무 작위적이라고 느껴졌다

몽골군이 상륙한 쓰시마섬의 고모다하마(小茂田浜) 해변, 지금은 해변가 인근에 신사가 세워져 매년 몽골군을 막다 전사한 쓰시마의 무사들을 추도하고 있다 소 스게쿠니 역시 이곳에 매장되어있다

 

 

2. 쓰시마에 눈 따위는 내리지 않는다

부산에 사는 사람은 알겠지만 경상남도, 특히 남해안 지역에는 눈이 잘 안내리는데 눈 안내리기로 유명한 부산에서 더 남쪽에 위치한 쓰시마에 눈이 내린다는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근데 이 게임에선 북쪽으로 올라가면 눈이 아주 하늘이 뚫린듯이 내리고 있다. 아니 북쪽이니까 대설???? 남쪽이면 더움???? 쓰시마는 홋카이도의 눈과 규슈의 폭염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마경이란 말인가?

 

방천화극을 든 몽골여포와 숨막히는 1대1 결투

 

3. 전국무장들이 보고 비웃을 명예타령 

이 게임에서 사무라이들이 보여주는 명예타령은 정말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수준인데 이게 얼마나 심각하냐면 적군이 먹을 물에 독을 타는것 조차 명예스럽지 않다고 개소릴 지껄이지 않나, 이 게임의 명예타령 판소리꾼의 거두 되시는 시무라공은 아군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어디론가 행군하는 적들을 발견하자 그냥 지나가자는 주인공 말을 "사무라이는 적에게 등을 돌리면 안된다!!"라는 병신같은 소리로 가볍게 씹고 반자이 돌격을 감행한다. 

 

물론 소위 Weebs라 불리는 서양인들은 사무라이는 명예를 목숨보다도 소중히 여겼다는 근거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만든 관련 대중매체에서도 그런 관념을 정형화 하는게 작금의 현실이다만 이건 너무한 수준이다

 

가마쿠라 막부의 창시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자신의 동생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를 암살하려고 한건 무엇일까? 막부와 조정, 싯켄이 서로 알력싸움을 벌이며 모략중상을 펼친건 명예로워서 한 행동인가? 싯켄 호조 도키무네가 자신의 무소불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복속을 요구하는 몽골 사신의 목을 벤 것은 또 뭔가?

 

애초에 현실은 녹록치 못하기에 당시를 살았던 무사들도 실리에 (물론 현대의 실리와 전근대의 실리는 많이 다르겠지만) 충실히 살아가는것이 당연한 일인데 본 게임에서 묘사되는 사무라이의 모습은 일본은 커녕 동양인도 아닌 사람들이 그려낸 "이상적으로 보이는 사무라이"를 그려냈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명예롭게 몽골인을 학살하는 사카이 진의 모습

 

3. 일본풍 장비

이 게임에서 무구란 가마쿠라 고유의 그것이 아니고 그냥 일본 느낌이 나는 무구들을 전부 짜집기했다고 보는것이 타당하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고오쓰의 배경이 되는 가마쿠라 시대에 이 게임에서 주구장창 사용하게 되는 우치가타나(打刀, 즉 타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가마쿠라 시대의 무사들은 기마상태로 싸우는것이 기본이였고 따라서 사용하는 도검 역시 도신이 길고 휘어진 타치(太刀)를 사용했다. 우치가타나가 등장한것은 작중 배경에서 200~300년은 지난 일이다

 

 

왼쪽은 타치를 패용하는 방식, 날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 오른쪽은 우치가타나를 패용하는 방식으로 날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또한 갑옷에서도 문제가 많은데 위 사진에서 주인공의 생선비늘 갑옷은 뭐 말할것도 없고 얼굴에 쓴 가면은 그 형태로 보아 일본의 무사들이 자신의 권위를 알리고 적에게 두려움을 주고자 착용했던 멘구(面具)로 보인다. 멘구가 헤이안 시대부터 존재했던 물건이기는 하지만 저런 형태의 멘구는 전국시대는 되서야 나오는 물건이고 당시에 사용했던 멘구는

 

 

 

 

이런 형태의 안면보호구였지 저런 식의 가면 형태는 절대 아니였다

 

 

 

 

갑옷도 문제지만 의복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 이 사진에서 주인공이 입고 있는 옷은 그 형태로 보아 우마노리하카마(馬乗袴)로 보이지만 그것은 에도시대에나 생긴 복식이고 실제 가마쿠라 시대의 하카마는

 

 

 

 

이렇게 소매가 넓고 전체적으로 펑퍼짐한 형태였다. 이렇듯 이 게임에서 가마쿠라시대의 고증 수준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맞는것이 하나 없고 일본사 게임이 아니라 일본풍 게임이라는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이건 자세하게 아는것이 아니라 첨언하는 수준으로 적겠으나, 저 게임 스샷에서의 불상 역시 무슨 부처인지 알 수 없고 불상 느낌만 내는 괴상한 석상이다. 본디 사진과 같이 결과부좌를 취한 형태의 불상이란 

 

 

 

 

이런 식의 수인이 있는 법인데 사진의 불상은 오른손으론 괴상한 석장인지 뭔지를 들고 있고 오른손으론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맵 최북단에서 바라본 부산(으로 유추되는 땅)

 

 

총평

이 게임은 잘 만든 액션게임이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잘 만든 일본사 게임이라곤 할 수 없겠다.  작중 보이는 작위적인 스토리, 괴상한 명예, 이도저도 아닌 무구와 복식에서 "서양인의 시선으로 본 사무라이들의 모습"이라는 극명한 한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