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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로에서 보이는 일본사 요소

아왕롭상갸초 2021. 5. 8. 22:51

 

 

 

 

 

프롬소프트웨어에서 제작한 액션 게임인 세키로는 프롬사 전통의 불사不死에 대한 이야기를 전국시대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 녹인 작품으로 그 특유의 극악한 난이도와 화려한 액션에서 오는 재미로  2019년 GOTY를 얻는 쾌거를 이루었다.

 

오늘은 세키로 속에서 보이는 일본사적 요소에 대해 몇가지 짧게 써보고자 한다.

 

 

 

 

 

아시나국이란 무엇일까?

 

-일본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일본이 지방의 지배을 확립하는 과정에 생겨난 지방의 행정구획인 오기칠도라는것을 알 것이다. 7세기 후반 일본 각 지방을 오와리,무사시,야마토 등의 쿠니(国)등을 나누고 그 나라마다 지방관인 카미(守)을 파견하는 "다이호 율령" 의 선포 이후로 일본은 잠시동안 천황이 이끄는 협치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지만 해마다 거듭되는 중앙 권력의 약화와 천황의 외척 가문이던 미나모토(겐지),타이라(헤이시),후지와라(도지) 가문의 알력싸움 끝은 무사권력의 증대로 이어졌고 곧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가마쿠라에 막부를 세움으로써 천황의 통치는 종결되고 무사들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가마쿠라의 막부도 훗날 일어난 아시카가씨에게 권력을 내주고 아시카가씨는 교토의 무로마치에 막부를 설치함으로써 무로마치 막부가 개막하였으며, 무로마치 막부는 100년간 잘 이어갔으나 1467년 일어난 "오닌의 난"이라는 대사건으로 권력과 권위를 상실하고 막부가 위치한 교토의 어소만 간신히 지키는 수준이 되고 말았는데, 이 혼란상에 벌어진 시대가 바로 전국시대다. 세키로는 바로 이러한 혼란상에서 스스로 나라를 일으킨 "북국의 영웅" 아시나 잇신이 건국한 아시나국의 쇠락을 배경으로 한다.
(북국北国 이란 북쪽의 추운 곳을 의미하는 일본의 관용어다, 반대되는 단어는 남국南国)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의문은 다음과 같다, "오기칠도에도 없고 역사서를 뒤져봐도 없는 이 아시나국이란 무어란 말인가? 아시나 잇신이 나라를 차지하더니 정신이 나가서 천황이 직접 정한 지방행정을 개무시하고 지 이름을 나라 이름에 가져다 붙이는 거만한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그럼 조선은 이李가의 국가였으므로 이국이 되겠군."

앞으로 제시할 두가지의 추측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중세 일본인의 성씨관념을 이해해야한다. 일본은 성과 씨가 분리되어있던 국가였는데 여기서 씨는 천황이 직접 하사하는것으로 그 씨를 받은 사람이 소속한 가문의 본가, 그 혈통이 연임했던 관직 등을 의미하고 천황이 직접 하사하는 씨와는 다르게 성은 혈연으로 이어진 가정에서 쓰이는 호적상의 이름으로 그 성을 가진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였다.(名字)

이것을 쉽게 풀어보자면 한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경우 조정 업무에 쓰이는 공식적인 문서에는 자신을 "미나모토노 아손(朝臣) 이에야스"라 칭했으나 평시엔 자신을 단지 도쿠가와 이에야스라고 칭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조정의 관위 제수를 위해 (관백직은 후지와라, 즉 헤이씨만 임명 가능) 후지와라를 잠시 칭하다 도요토미라는 씨를 새롭게 만든 것이지 하시바라는 성이 도요토미라는 씨가 생긴 이후에도 없어진건 아니였다.

종합해보았을때 아시나 잇신의 씨는 알아낼 방법이 없지만 그의 이름(名字)과 아시나의 용천참배 등을 꾸준히 언급하는 게임 내의 대사로 미루어 보았을때 아시나란 본디 그 지명을 의미하는것이라 아시나 잇신은 그것을 자신의 성으로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고, 아시나국이란 세키로 세계관에서는 "아시나"라는
지명의 이름을 따서 "아시나노쿠니"라는 쿠니가 실제로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다이묘들 사이에선 본인이 지배하는 성城의 이름을 성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잦았기도 하다)

 

 

 

보스들의 이름에서 보이는 사무라이들의 조정관직


오니교부,아시나칠본창 야마우치 시키부 토시카츠,아시나칠본창 오니와 슈메 마사츠구 같은 보스들의 경우에는 이름에 "교부" "시키부" "슈메"라는 낯선 단어가 붙어있는데, 이는 각자 교부形部 시키부式部 슈메主馬 라는 율령제로 인해 성립된 조정의 관직이다.

각 관직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설명하자면 교부形部는 사법과 재판을 담당하는 형부성(교부쇼) 휘하의 관직으로, 죄인의 처벌이나 재판 등을 담당하는 역할이였다.

시키부式部는 인사고과를 담당하는 식부성(시키부쇼)휘하의 관직이고, 식부성은 천황이 친정하던 헤이안 시대 당시에는 집안이나 경력이나 학력등이 가장 출중한 사람이 들어가던 성이라고 알려진다.

슈메主馬는 궁성의 말을 관리하던 주마료(슈메료우)휘하의 관직으로 황궁의 말을 관리하는 관직이였다.

이렇게 보자면 성의 대문을 지키는 오니교부가 사법 관련한 관직을 제수하고 있는건 고사하고, 딱봐도 文보다는 武가 가까워 보이는 무사인 아시나칠본창 두명이 자기 본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사,말 관리 관련한 관직을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게 느껴지지만, 그것은 전국시대의 특수성을 알아보면 금방 이해되는 문제다.

전국시대에 조정은 이미 힘을 잃은지 오래였으나 일본인에게 천황이 가진 영향력은 감히 무시할 수 없었다. 천황이 사는 교토 역시 일본의 수도인만큼 일본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고, 모든 권력을 뺏긴데다가 열도를 뒤흔든 전란속에 궁핍하게 살아가던 교토의 공가公家는 생존을 위해 지방 다이묘들에게 일정 대가를 받고 관직이나 와카,다도 등의 문화지식을 판매했는데,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던 다이묘들은 앞다투어 관직을 구매하기 위해 조정에 구애하였다.

하지만 본 게임에 나오는 교부,시키부,슈메는 조정으로부터 직접 하사받을 정도로 높은 벼슬이 아니다. 아시나 잇신이 자신의 수하를 치하하기 위해 수여한 벼슬이라 볼 수 있다. 세키로에 나오는 일본의 관직 중 조정으로부터 직접 받을정도로 높은 벼슬은 게임 후반부에 나오는 "내부군"이 있겠다. 내부군은 나이후内府의 최고지도자 나이다이진内大臣의 군대라는 뜻으로, 나이다이진은 무려 정이위로 조선의 정이품에 해당되는 높은 벼슬이다.

작중 등장하는 장구류

 


게임의 컨셉아트를 보면 아시나 겐이치로가 착용한 갑옷의 가슴팍은 보통의 일본 갑옷과는 다르게 판갑으로 되어있는것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본 사진의 난반도구소쿠는 도쿠가와 요리노부가 아버지인 이에야스를 위해 이에야스를 모시는 신사인 도쇼구東照宮에 봉납한 갑주다

난반도구소쿠南蛮胴具足라고 하는 것으로, 전국시대 중기부터 포르투칼과 네덜란드 등의 "남만"과 교류가 잦아지며 그들의 갑옷 양식 엳시 받아들인 일본이 독자적으로 개량한 양식으로 방어력이 높아 널리 쓰였다.


아시나 사병이 착용하는 갑옷은 오카시구소쿠御貸具足라고 하는 물건인데, 이는 임진왜란을 다루는 한국 드라마에서도 자주 보이는 갑옷이라 친숙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오카시구소쿠의 이름은 참으로 재미있는데 무려 "빌린 갑옷"이라는 뜻이다. 전국시대의 일반 병사들은 다이묘로부터 갑옷은 물론 무기류까지 전쟁때마다 일시적으로 대여하는 형식이였는데, 전쟁이 끝나면 반납하는 형식이였고 잃어버리거나 훼손되면 갚아야 했다. 국군도 제대하면 총을 반납해야 하는데 이게 바로 내선일체 아닐까?




게임 후반부에 가는 스테이지인 기원의 궁에 나오는 몹인 오카미 여인무사들은 아시나국의 일반적인 몹과 확연히 다른 무장을 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갑옷은 오오요로이大鎧라고 하는 헤이안~가마쿠라 시대의 갑옷이다. 기원의 궁의 몹들이 작중의 배경이 되는 전국시대로부터 수백년 전의 갑옷을 입고 나오는 것은 기원의 궁이 터무니 없이 오래 되었음을 나타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또한 오카미 여인무사가 착용하고 있는 모자는 에보시烏帽子라고 하는 모자인데, 헤이안 시대부터 전국시대까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일상적으로 착용했던 물건이라 위 사진과 같이 에보시 모양의 투구까지 존재할 정도다. 에보시 같은 모자가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이유는 당시 일본은 상투를 보이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무라이 대장들은 진바오리라고 하는 겉옷을 걸친 개체를 제외하면 전형적인 당세구족의 표본인데, 특이하게 몸통만은 일반적인 스타일로 철판을 매끈하게 제련한 요코하기도오横矧胴가 아닌 끈으로 철판을 엮어 만든 모가미도오最上胴의 형태다.

요코하기도오

 

모가미도오